태풍 사라
1959. 9. 17. | 한반도 전역
피해
사망 849명,
실종 206명,
부상 2,533명,
이재민 37만여명
피해액 1억200만 달러
유형
원인
역대급 태풍의 한반도 관통
1959년 사라호 태풍 내습
진행
- 대한민국 기상관측 사상 이래 최악의 태풍이다. 일제강점기에는 2353호, 3693호 등 더 많은 인명피해를 준 태풍도 있었다.
- 1959년의 14번째 태풍으로 탄생하여, 최저 기압 905 hPA에 1분 평균 최대풍속이 85m/s 수준까지 발달했다.
- 2000년대에 와서 가장 강력하게 상륙했던 태풍 매미보다 최전성기나 한반도 상륙당시나 조금 더 강한 태풍이었다.
- 부산 상륙 당시 최저 기압은 951.5 hPA로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낮았다.
- 당시는 TV는 물론 라디오 보급율도 높지 않았을 뿐더러 기상에 대한 지식도 지금과 같지 않아서, 시골 사람들에게는 일기 예보라는 개념도 별로 없던 시절이다.
- 태풍 상륙 당시는 추석이어서 차례상을 차리고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 사람들은 단순 비인지 태풍인지 알 수가 없었고, 비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태풍은 위험 반경이 아닌 왼쪽으로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 일기 예보가 전달되기 어려웠고, 제방 정비 등이 지금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낳았다.
- 피해 주택은 1만여 동, 침수된 농경지는 20만여 ha, 도로 10,226개소, 제방 1,618개소, 축대 152개소, 교량 2개소가 유실 되거나 파손되는 등, 공공시설의 피해도 컸다.
- 해상에서는 강풍에 의한 높은 파도와 해일이 겹치면서 9천 척이 넘는 선박이 파손되거나 침몰했다.
- 재산피해의 합은 2022년 화폐가치 기준으로 6조 9140여억 원에 달한다.
- 인명 피해는 사망·실종 849명, 부상자 2533명에 달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현재까지 최악의 자연재해가 되었다.
결과
- 전후 재건이 채 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한반도, 특히 경상도 지역을 초토화 시켜 한국 경제가 주춤했다.
- 이후 농경지에 이용하는 하천을 중심으로 하천개수사업이 실시되었고, 1961년 하천법이 제정되어 하천 정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사점
- 지구 온난화 등으로 사라호에 준하는 위력을 가진 태풍들이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예전 만큼의 피해가 없는 이유는 예전에 비해 예보 기술과 통신이 발달하고, 방재 시설이 정비되었기 때문이다.
- 태풍 사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존하고 있는 재난 대비 시설이나 제도는 수많은 재난 피해자가 쌓아 올린 제방과도 같다.
- 그러므로 이러한 시설이나 제도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안전을 잘 챙기는 것이야 말로 재난 피해자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기리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