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재난 이야기

00 재난 이야기

  •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 , 크리스마스의 비극 254명 사상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 , 크리스마스의 비극 254명 사상

    1971. 12. 25. | 서울 명동

    사망 191명, 부상 63명
    피해액 8억 3,820만 원

    프로판 가스 취급 부주의
    및 안전설비 미비

    • 대연각호텔은 지상21층, 지하2층으로 이루어진, 당시로는 보기 드문 고층빌딩이었다. 그래서 국제 행사나 귀빈들도 모시는 호텔이었다.
    • 지어진 지 1년 6개월밖에 안 된 새 건물이었다.
    • 사고 당일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로 대연각 호텔은 많은 사람이 붐볐다.
    • 오전 9시 50분경, 1층 커피 숍에서 프로판 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 가장 가까운 소방서가 불과 7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소방서의 초기 대응이 빨랐다. 소방인력도 최종적으로는 2,000명 정도 동원될 정도로 많은 인력이 있었다.
    • 하지만, 호텔 내부에 대부분 가연성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서 21층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기까지는 단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 또한 당시 내부에 소화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비상구나 대피계단도 몇 없는 등 내부의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 소방 사다리차 등도 있었지만 당시는 8층 높이밖에 닫지 않아서 위쪽으로는 구조할 수 없었다.
    • 헬기가 많이 동원되었지만, 헬기가 착률할 수 있는 헬리패드가 없어서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내려 구조하다가 추락사 하는 경우도 있었다.
    • 급한 나머지 침대 메트리스를 깔고 뛰어내리다가 사망한 사람이 많았다.
    • 7층 이하 저층에 있던 사람들과 간신히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불길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 화재는 7시간이 지나서야 완전 진화되었고, 건물은 전소되었다.
    • 이후 모든 고층 건물에 스프링클러 등 화재 진압 시스템 설치가 의무화 되었고, 건물 옥상에는 헬리패드를 의무적으로 확보하도록 법률이 만들어졌다.
    • 사다리차 등 소방 장비의 물적, 양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 영화 타워링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 MBC 등에서 생중계 되어 처참한 광경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좋지만, 발생했을 때를 피해를 최소화(fail safe1) 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 대응인력이 아무리 많아도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에 따라 불연성 자재를 사용하고, 비상 대피구나 대피 계단을 만들어 대피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초기 진화를 할 수 있도록 소화시설도 갖추고 대피 훈련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는 모두 법제화가 되었다.
    • 시설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피난통로를 확보하고, 시설을 계속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여유가 있을 때는 “여기서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지?” 라는 망상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1. 실패 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전략 ↩︎
  •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무단 발파로 276명 사상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무단 발파로 276명 사상

    1993. 3. 28. | 구포역 인근

    사망 78명, 부상 198명,
    31억 원

    철도청과 미협의한 채
    무리한 발파 작업 진행

    구포역 열차 탈선 사고
    구포역 열차 참사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현장 찌그러진 객차
    • 사고 당일, 삼성종합건설이 케이블을 지하에 매립하기 위해 선로 아래에 발파 작업을 했다. 이 때 철도청과 협의 없이 독단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 당시 철도청 고시에는 철로를 횡단하는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철도청의 승인을 얻어야 했고, 특히 지하물 공사는 철도청만이 시공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이 발파 작업의 충격으로 선로를 받치고 있던 흙더미가 길이 30m, 폭 23m, 깊이 9m 만큼 매몰되었다. 즉, 커다란 구덩이 위에 선로만 받치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 한편, 승객을 태운 무궁화호는 양산 물금역을 지나고, 구포역 정차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 시속 85km로 정상 운행중이었다.
    • 그런데 100m 전방 선로의 지반이 무너진 모습을 본 기관사는 곧바로 긴급제동을 시도했다.
    • 그러나 제동 거리가 충분하지 않아서, 결국 열차 8량 중 4량(기관차, 발전차, 객차 2량)이 무너진 지반으로 곤두박질 쳤고, 나머지 차량도 탈선했다.
    • 객차가 곤두박질 치면서 단단한 발전차에 부딛쳐서 휴지조각처럼 찌부러졌다.
    • 발전차 바로 뒤에 이어진 객차에 탄 승객은 대부분 사망했다.
    • 다행히 기관사가 생존해서, 이 사고의 전말이 빠르고 정확하게 드러났다.
    • 법이 개정되어 철도 경계선 30m 이내 공사는 반드시 관련부처에 신고하게 되었다.
    • 삼성종합건설 사장 및 관련자 16명이 구속되었으나, 입원급은 모두 과실치사 건에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고, 뇌물공여에 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삼성종합건설은 2,550만원 과징금과 6개월 영업정지를 받고, 1996년 삼성물산에 합병되었다.
    • 기관사는 불가항력이었고, 사고 대응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 시설이 대형화 되고 복잡화 될수록, 법으로 규제되어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안전 절차에 관한 법은 ‘최소한’의 안전절차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 열차 탈선 사고는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 사고이므로, 탈선을 했을 경우에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탈선이 우려되는 구간을 서행하는 경우도 있고, 관절대차의 사용이 효과를 본 일이 있다고 한다.
    • 노반 붕괴는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사전점검을 철저히 해야하며, 붕괴 우려를 발경하는 때는, 신속하게 운행중단 조치를 해야한다.
    • 또한 시민들도 시설 이용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러한 안전 조치들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당연하게 여기는 안전 문화 확립이 필요하다.
  • 이리역 폭발 사고 , 다이너마이트 대폭발로 1,402명 사상

    이리역 폭발 사고 , 다이너마이트 대폭발로 1,402명 사상

    1977. 11. 11. | 이리역(現익산역)

    사망 59명, 부상 1,343명,
    이재민 7,800여 명,
    가옥 6,800여 채 등
    재산피해 61억 원

    철도 공무원 뇌물 관행,
    화약 호송원 부주의

    이리역 사고, 이리역 폭발 사건

    이리역 폭발 사고 현장 구덩이가 크고 깊게 파인 리리역
    •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現한화)의 화물 열차가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폭발물 40톤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했다.
    • 하지만 당시 철도 공무원 사이에서는 ‘급행’이라는 명목으로 뇌물이 횡행했다.
    • 돈을 주지 않으면 열차를 제 시간에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 이에 따라 화약 호송원은 정차 시간동안 술을 마시고 무단으로 다이너마이트가 실린 화물차 안에 들어가서 촛불을 켜두고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어보니 불이 화약에 옮겨 붙고 있었다.
    • 당시 다이너마이트 상자, 뇌관상자 등 화약물 30톤이 실려 있었다. 
    • 깜짝 놀란 호송원은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소화기 같은 소화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 다른 직원들도 눈치를 챘지만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가 남아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 결국 열차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다이너마이트 등이 반응하여 대폭발을 일으켰다.
    • 이리역사를 중심으로 지름 30m, 깊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 기관차 본체는 폭심지로부터 700m 떨어진 민가까지 날아가버렸고 일부 파편은 직선거리가 7km나 되는 춘포면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 폭파 직후 기절했던 역무원이 정신을 차리고 들어 오려고 하는 다른 열차에 웃옷으로 신호를 보내 멈추었다.
    • 이리역에 정차 중이던 유조화차 기관사가 연락을 받고 뛰어 나와 인근 역으로 열차를 옮겼다.
    • 한국화약그룹 회장은 즉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전재산 90억 원을 모두 구호활동에 썼다.
    • 도주하던 호송원은 붙잡혀 ‘부작위에 의한 폭발물파열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만기출소 했다.
    • 진입하려던 열차를 멈춘 역무원은 후에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정부는 ‘새 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하여 이리시에 재정을 지원했다.
    • 수습과정에서 미담사례가 많았다. 자세한 것은 나무위키 참조.
    • 당시 국민가수이던 화춘화 공연 진행 도중 폭발이 일어났는데, 무명 MC가 화춘화를 구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MC가 이주일이다.
    • 폭발 후 이리역 주변에서 어린이들 사이에 ‘목걸이 줍기’가 유행했다.
    • ‘이리’라는 지명이 사라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 이리역이 사라지고, 익산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 안전 법규는 꼭 준수해야 한다. 법은 국회의원이 통과시키지만, 법 조문 1줄에 녹아 있는 것은 실무자들 고민의 결정체이다.
    • 재난을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미 발생했을 때는 자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응체제로 신속히 넘어가야 한다.
  •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 지역축제가 지옥축제로 159명 사상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 지역축제가 지옥축제로 159명 사상

    2005. 10. 3. | 상주시민운동장

    사망 11명, 부상 148명

    다중인원 관리 실패.
    용역 비리로 인력 부족

    상주 공연장 압사 사고
    상주 축제 사고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당시 현장, 분주해보이는 사람들
    • 사고 당일, 상주 자전거 축제 초청 공연으로 MBC 가요 콘서트가 예정되었다.
    •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가 진행 예정이어서 1만 명의 인파가 상주시민운동장 인근으로 모여 있었다.
    • 주최 측은 사건 발생 직전 행사 시작 전까지 하나의 출입구(직 3문)만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 5천 명 정도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개방 예정인 하나의 출입구로 몰려들었다.
    • 대기 인원 급증으로 안전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계획을 고수했다.
    • 경찰 측이 출입구 추가 개방을 권고 했으나, 주최 측이 유명 연예인 리허설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고 기타 안전 문제로 거절했다.
    • 한 시민은 줄서기를 주최측에게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 상주시 공무원이, 주최 측 지시에 따라 직 3문 열쇠로 출입구 개방을 시도 했으나, 대기 인원들 속에서 앞 열에 있던 노약자 중 한 명이 밀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뒷 사람들까지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재난으로 확대되었다.
    •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인과 어린이 피해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당시 사망자는 대다수가 60대 이상이거나 10대였다.
    • 사고가 일어난 직 3문은 원래 입구가 아닌 출구로, 운동장 안쪽으로 경사가 45도에 가까워 매우 가파르다.
    • 진행방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이동할 경우 아래쪽으로 인파가 쏠려서 연쇄적으로 넘어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
    • 주최 측의 주장으로는 경찰에 230명의 경찰 병력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당시 배치된 경찰 병력은 30명에 불과했다.
    • 또한 주최 측에서는 당시 직 3문과 4문, 즉 두 개의 문을 개방할 예정이었으나, 연예인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직 4문 부근에 있다는 이유로 MBC에서 거절하여 직 3문만 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관련자 처벌 : 상주시장, 주최측(국제문화진흥협회) 회장 및 부회장, 지자체 국장, 과장, 계장, mbc PD
    • 재해대처계획의 정비, 지역축제 안전관리계획 수립 및 심의 의무화 등
    • 다중 밀집이 예상되는 행사 시 주최자는 방문 인원을 예측해 계획에 반영해야 하며, 통행 인원을 관리해야 함.
    • 참여자는 가급적 다중 밀집지역 통행을 자제하고, 부득이 다중 밀집지역에 갔을 때는 경각심을 가지고 자기보호를 준비를 해야 함.
  • 방재직 공무원 현실, 퇴직하는 이유 2/2

    방재직 공무원 현실, 퇴직하는 이유 2/2

    방재직 공무원 현실 관련 재난으로 부서진 집과 자동차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포스팅에 이어 지역의 재난관리와 안전을 위해 일하는 ‘ 방재직 공무원 ‘의 현실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개선이 되지 않는 정책들

    이전 포스팅에서 봐 왔던 여러 문제들이 개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부처에도 담당자나 관리자가 바뀌거나, 관련 기관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서 흐지부지하게 된 것이 이제 10년째입니다.

    최근에서야 재난공무원 수당(8만원)을 신설했다는데, 사실 이건 웬만한 직렬들은 다 가지고 있는 직렬 수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책조차도 지자체 실적으로 넣는 행태

    방재안전직 개선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를 실시하는데, 문제는 이런 제도를 중앙부처에서 지자체에 직접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 자율적으로 하되 지자체 실적으로 평가한다는 식의 정책이 많습니다.

    유명한 것이 안전신문고 사태입니다. 안전신문고는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안전신고를 접수하는 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이기도 합니다. 다만 행정안전부에서 지자체에 ‘신고 실적’을 정부합동평가 지표에 할당하는 바람에 공무원 담당자들이 신고해서 스스로 신고 완료되었다고 보고하는 이상한 행태가 벌어졌었습니다.

    재난 담당자는 감사부서로부터 왜 정부합동평가 실적을 안 맞추냐로 압박 받고, 사업부서로 부터 왜 공무원끼리 신고하냐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모 지자체의 재난담당자는 본인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신고한 건수가 많아서, 행정안전부로부터 상을 주겠다고 연락이 온 웃지 못할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물론 시민이 아니라 공무원이라서 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지제차에서 재난 공무원 처우를 개선하라고 내려 준 일을 오히려 방재안전직 공무원 혼자서 해결해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겪은 최악의 경험들

    적은 공무원 월급에 분위기 내려고 부산 호텔에서 숙박하던 중, 재난이 터져 그날 저녁에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연인으로 부터 ‘너는 일밖에 모른다.’ ‘너밖에 일 할 사람이 없냐?’는 소리를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한 번은 야근을 하고 10시에 퇴근해서 11시에 씻고 나왔는데, 5분 전에 부재중 통화가 와 있어서 전화를 거니까, 전화를 왜 안 받냐고 지금 재난이 터졌는데 정신 있냐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단 5분도 휴대폰을 손에서 떼는 게 죄인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밤 11시에 출근했습니다. 초과 수당은 당연히 없고 그날은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에 당연히 퇴근 못하고 쭉 일을 이어서 했습니다.

    재난이라는 게 물론 엄청 중요한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도를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는 교대로 해야하는 일이지만 방재직 공무원 현실 은 그렇지 못합니다.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상설화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때문에 만든 임시기구 비변사가 나중에는 국정을 총괄하는 상시기구화 된 것은 한국사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거의 365일 가동중이라는 것은 현업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면 잘 모르실 겁니다.

    재난안전대책본부 운영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평시보다는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죠. 하지만 비상시 많이 발생한 업무를 지금은 재난 담당 공무원(주로 방재안전직 공무원)이 다 처리하고 있습니다.

    업무가 제대로 되는 것 같으신가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중앙부처든 지자체든 전부 재난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행동은 중요하게 하지 않습니다.

    “제발, 내가 있는 동안은 재난이 터지지 마라.” 기도만 할 뿐이죠.
    그래서 다른 일도 많은데, 재난 쪽에 더 투입할 인력이 없다.는 식으로 현실적으로는 업무를 기피합니다.

    이에 대해서 다음 포스팅에는 제가 생각하는 재난관리 체계 개선 방법에 대해서 작성해보겠습니다.

    두서없이 빠르게 작성한 글이라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재편집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