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그냥 이야기

  • 블로그 수익화가 너무 어렵다

    블로그 수익화가 너무 어렵다

    워드프레스로 블로그 수익화를 위해 노력한 지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블로그 수익화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티스토리나 워드프레스를 이용한다면 구글 애드센스를 게재해서 뷰당 광고 수입을 얻는 방법이 가장 흔하다. 나역시 애드센스를 이용한 방법으로 하고 있지만, 하루 수입이 1달러 채 되지 않는다.

    구글 애드센스는 단가, 즉 페이지 RPM이 중요한데, 이 단가를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많은 사람이 보게끔 뷰 수를 올리는 일이다.

    단가 낮은 뷰 수는 애드센스에서 큰 의미가 없다.

    나도 뷰가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나오는 편이지만, 단가가 1,000뷰당 1달러가 안 되기 때문에 1년 간의 노력은 거의 실패였다고 생각되고, 지금도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이 많다.

    이 문제는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과거 수입을 많이 올리던 사람조차도 최근에는 뷰 수와 단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글이 무분별하게 작성되고 있고, 글을 읽는 사람도 이때문에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이젠 티스토리나 워드프레스로 작성한 블로그 글은 그냥 거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신규 진입인 내가 승산이 그다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웹사이트를 만드는 재미는 있다. 이러한 기술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취미활동으로 다꾸 놀이 하듯이 글을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정도 더 고민하고나서 방향을 정해야겠다.

    한편, 네이버 블로그가 오히려 승승장구이다.

    올 8월부터 시작했는데, 운이 좋아서 최적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수입을 꽤 얻고 있다.

    1달째부터 이미 워드프레스 수익을 앞질렀고, 지금은 원고 수입의 비중이 높고, 애드포스트 수입도 워드프레스 애드센스 수입의 10배 정도 된다. 애드포스트가 단가가 낮다고 하지만, 내 사이트의 애드센스는 훨씬 단가가 낮다.

    그래서 오히려 애드센스나 광고 수입을 노리는 것은 네이버 블로그에, 개인적인 것은 워드프레스에 작성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지금 작성하는 이 사이트는 지금도 개인적인 글을 쓰고 있지만, 다른 사이트들은 단가를 노리고 글을 작성하는데, 1년이나 지났지만 도무지 단가가 오르지 않는다.

    상담을 하면 글을 1,000개는 쓰고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지금 거의 절반 정도는 썼는데 단가가 이 모양이면, 단가가 40~50배 쯤 오르지 않는 이상 네이버 블로그의 글 작성 노력 대비 수입을 넘기 어려울 듯 하다.

    남는 시간에 유튜브나 할까?

    트래픽을 모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 내 생각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 내 생각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논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쿠데타를 통해 조선을 건국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아서라고 한다.

    다만 여기서 살펴봐야 할 사항이 있다.

    과연 현대에도 정당성이 인정될까?

    과거 고려나 조선은 왕정시대였다. 헌법이 따로 없었으며, 왕의 명령이 곧 헌법이자 법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논리로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 불과하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힘’이 헌법에서 나온다. 국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오고 국민들의 의사의 합치가 곧 ‘헌법’이다.

    즉, 대한민국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헌법’을 준수해야하고, 헌법이 금지하는 쿠데타 역시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법이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는?

    그렇다면 다른 가정을 해 보자. 쿠데타 세력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기존의 헌법이 무력화된다. 그리고 헌법이 무력화되었다는 의미는 헌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위임한 모든 국민들과 적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 그 땅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헌법을 만들 때처럼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아니면, ‘국민들은 내 힘으로 굴복되는 사람들’이라고 공포하고 전제정치를 펼치면 된다. 과거 왕정시대처럼 ‘힘의 논리’ 즉, “너가 말을 안 들으면 끔찍한 일을 당할거야.”라는 협박을 통해서 나라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고려해야할 점이 있다. 현대 시대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권’과 ‘인륜’을 설득할 수 있을지이다. 아마 대부분의 나라는 반대할 듯 하다.

    그렇게 된다면, 쿠데타 세력도, 세계적인 입장에서 보면 결국 “별볼일 없는” 세력이다. 그래서 이러한 ‘힘의 논리’는 다른 나라들에 의해서 깨지게 된다.

    그래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은 현대 시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쿠데타와 혁명의 차이점

    결국 쿠데타와 혁명은 수행 방법은 비슷하지만,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그 구분이 갈린다고 생각한다.

    시민 개개인이 가장 중요한 시대에서는, 시민의 지지를 받으면 그 형태가 어떻든 결국 인정을 받게되는 점이 핵심이다.

    중우정치의 문제

    우매한 시민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생각해야할 점은 국가 위에 시민이 있다는 점이다.

    시민의 우매함으로 나라가 망해도 그건 시민들의 책임이다. 정치 뿐만 아니라 생명의 진화 자체가 실패를 통해 배워서 이뤄진다. 긴 시간에 걸쳐 잘못된 방향을 조금씩 바로잡는 것이 정치이다.

    만일 그게 싫다면 전제군주에게 자신의 자유를 위탁하면 된다. 이것도 헌법으로 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지금의 정치인이 싫어

    여기서 올바른 정치인의 역할이 나온다. 정치인은 당연히 ‘정치’의 프로(전문가)여야하고, 시민이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할 때, 좋은 방향으로 향하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제가 아니라 설득이다.

    또 모든 사람의 의사는 당연히 합치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이러한 의견의 차이에 대해서 앞서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앞서서 ‘중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반대 생각하는 국민들을 ‘강요’하고, 앞장 서서 ‘신나게 싸우는’ 지금 정치인들을 싫어한다.

  • 자식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게 자식을 위하는 걸까?

    자식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게 자식을 위하는 걸까?

    지금은 딸바보, 아들바보의 시대다. 옛날에도 그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훨씬 더하다.

    오늘도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문을 닫는 바람에, 내가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끼였다. 물론 센서 때문에 금방 다시 열렸지만 말이다.

    이에 아버지는 아이보고 왜 닫기 누르냐고 말했고, 엄마는 애가 안 그랬다며 바로 감싼다. 그런데 나는 애기가 버튼을 누르는 걸 분명히 봤다.

    물론 나는 따지지도 않고 괜찮다고만 말했다.

    피해본 나에 대한 사과는 차치하고서라도, 진짜로 자식을 위한다면 올바른 의식 확립을 위해 혼내거나 정확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뭐 이 사건 정도는 그래도 양식있는 부모라면 아이를 혼내는 게 맞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양식없는 부모가 꽤 많다.

    특히 본인이 혼내도 남이 혼내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부모들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내 아이는 나만 혼낼 수 있다는 의식이 가득 담겨있고(마치 내 소유인 것처럼), 그 대신 내가 자식에게 다 퍼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어려 있다.

    얼마 전 또다른 일이 있었다.

    비싼 고깃집에 갔는데, 애기를 동반한 가족이 와 있었다. 애기는 자기가 먹는 게 뭔지도 모른 채 휴대폰 게임에 열중이었다.

    당연히 먹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기 어려운 나이였다.

    하지만 부모의 벌이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경험을 많이 한 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될까?

    극소수의 아이를 제외하면 20대에도 30대에도 쉽게 그렇게 비싼 고기를 먹기는 힘들 것이다.

    성인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 그런데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이제 성이 안 찰 것이다. 20만원짜리 외식이 아니라 5만원 짜리 외식도 고민하고 해야할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도 20만원 짜리 고기를 소비하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그럼 이 아이는 그때 과연 행복을 느낄까 불행을 느낄까?

    과거에 쉽게 20만원짜리 비싼 고기를 먹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할까?

    아니면, 과거에 20만원짜리 비싼 고기를 먹었지만, 지금은 5만원 짜리밖에 못먹으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지금의 20대들이 겪는 문제가 이런 문제일 듯하다.
    스스로 돈을 열심히 벌어도 부모님과 같이 살 때만큼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부모님과는 비교적 쉽게 비싼 여행지에도 가고, 많은 외식을 했지만, 그들 스스로 혹은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는 그렇게 해 주지 못한다.

    물론 부모나 아이가 죽을 때까지 책임 져준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보통은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자식은 스스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불행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으려면? 자식이 스스로 성취할 정도는 남겨둬야 한다.

    무조건 퍼주는 게 아니라, 예고편 정도만 보여주는 게 오히려 낫다.

    지금 부모들이 아이일 때는 ‘공부’가 그러했다. 그때의 부모가 학업을 못했으니,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해 공부를 열심히 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는 자신이 못했던 ‘경험’을 그 자식에게 투영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식들은 부모가 물려 준 ‘가상의 경쟁자’와 싸우느라 힘겨워 하고 있다.

    내가 자식이 없어서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 ‘ 창백한 푸른 점 ‘을 생각해보며

    ‘ 창백한 푸른 점 ‘을 생각해보며

    칼 세이건의 ‘ 창백한 푸른 점 ‘과 나는 인연이 깊다.

    나는 어릴 때 과학자를 꿈꾸던 아이였고,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진학은 못 했지만, 당시 아이의 작은 머리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 파묻혀 상대성 이론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과학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학자들과 마주했다. 그 중 칼 세이건은 특별했다.

    칼 세이건은 냉철하고 실험,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과학 이야기를 마치 문학처럼 이야기하는 과학계의 음유시인이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을 뒤로 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과학책을 하나씩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중 <창백한 푸른 점>은 꽤 일찍 구매했다. 팬심으로 이 창백한 푸른 점의 문구를 한국어로 녹음해서 영상으로 만들었다. 칼 세이건처럼 멋들어진 목소리는 아니지만, 난 그래도 성우 공부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녹음했다. 녹음 결과물로서는 매우 부족하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샘플 영상으로 쓰고 있다.

    우주는 거대하다. 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아서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에 과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과 이야기해보면, 우주의 크기를 전혀 가늠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듯하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400억 광년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지라도, 마치 사진처럼, 영화처럼 시각에 의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방법을 칼 세이건이 찾아냈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보잘것없는 점 하나가 실은 우리가 사랑하고, 증오하고, 투쟁해 온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사진 하나로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는 먼지 티끌보다도 미약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먼지 하나하나도 결국 이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우리의 움직임이 미약하지만, 운동으로 인한 파동은 아마도 우주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우주 끝을 향해 퍼져나갈 것이다. 크기는 미약할지언정 나비효과처럼 먼지든 퀘이사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끊임없이 미치며, 우주 자체를 만들어나가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존재가 미약하다고 기죽지 않고, 우주의 구성원으로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 먹어 본 후 솔직 후기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 먹어 본 후 솔직 후기

    탁자 위에 놓여있는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 버전이 새로 나와서 사먹어 보았다.

    먼저 성분표를 보면 깨끗하다.

    보통 안 좋은 성분으로 많이 보는 게 당류와 포화지방이다.

    당류는 1.7g, 포화지방은 0.8g으로 매우 양호하다.

    거기다 단백질이 무려 12g. 식물성 단백질은 반쪽짜리 단백질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12g. 간식 한 끼 정도는 이걸로 챙겨도 될 듯 하다.

    또 대체당인 알룰로오스를 많이 섭취했을 때 괜찮은지에 대한 논박이 많은데, 알룰로오스도 그렇게 많지 않다.

    적어도 성분표상으로 보면 건강 챙기는 사람들이 매우매우 좋아할 만한 스펙이다.

    그럼 실제 맛은 어떨까?

    비교군이라면,

    노란색 매일두유 99.9,

    파란색 매일두유 고단백,

    검은색 매일두유 검은콩이 있다.

    노란색 99.9는 아주 심심하다. 물론 익숙해지면 슴슴하면서 고소한 맛이 매력이기는 하지만, 다른 두유에 비하면 무맛에 가까운 아주 플레인한 맛이다.

    그에 비하면 파란색 두유는 당 함류량은 적지만, 의외로 대체당이 많이 들어가서 단맛이 강하게 난다. 원래 두유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맛도 괜찮지만 99.9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좀 과한 단맛이다.

    검정색 검은콩 두유는 99.9에 비해서 콩 특유의 고소함이 강하다. 그래서 은근 마니아층이 많지만, 당류가 꽤 함유되어 있어서 당류를 철저하게 제한하는 사람에겐 선택을 못 받는다.

    그에 비해 이번 매일두유 검은콩 고단백 제품은 이 세 가지 두유의 장점만 모아놓은 듯하다. 적어도 나 기준에서는 그렇다.

    99.9보다는 조금 단맛이 나지만, 대체당이 많이 섞여있지 않아 은은한 단맛이 나고, 고단백이라 단백질이 12g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검은콩 두유 특유의 고소함까지 묻어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매일두유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물론 99.9의 슴슴한 맛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99.9와 검은콩 고단백과 병용해서 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