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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무단 발파로 276명 사상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 무단 발파로 276명 사상

    1993. 3. 28. | 구포역 인근

    사망 78명, 부상 198명,
    31억 원

    철도청과 미협의한 채
    무리한 발파 작업 진행

    구포역 열차 탈선 사고
    구포역 열차 참사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현장 찌그러진 객차
    • 사고 당일, 삼성종합건설이 케이블을 지하에 매립하기 위해 선로 아래에 발파 작업을 했다. 이 때 철도청과 협의 없이 독단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 당시 철도청 고시에는 철로를 횡단하는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철도청의 승인을 얻어야 했고, 특히 지하물 공사는 철도청만이 시공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이 발파 작업의 충격으로 선로를 받치고 있던 흙더미가 길이 30m, 폭 23m, 깊이 9m 만큼 매몰되었다. 즉, 커다란 구덩이 위에 선로만 받치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 한편, 승객을 태운 무궁화호는 양산 물금역을 지나고, 구포역 정차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 시속 85km로 정상 운행중이었다.
    • 그런데 100m 전방 선로의 지반이 무너진 모습을 본 기관사는 곧바로 긴급제동을 시도했다.
    • 그러나 제동 거리가 충분하지 않아서, 결국 열차 8량 중 4량(기관차, 발전차, 객차 2량)이 무너진 지반으로 곤두박질 쳤고, 나머지 차량도 탈선했다.
    • 객차가 곤두박질 치면서 단단한 발전차에 부딛쳐서 휴지조각처럼 찌부러졌다.
    • 발전차 바로 뒤에 이어진 객차에 탄 승객은 대부분 사망했다.
    • 다행히 기관사가 생존해서, 이 사고의 전말이 빠르고 정확하게 드러났다.
    • 법이 개정되어 철도 경계선 30m 이내 공사는 반드시 관련부처에 신고하게 되었다.
    • 삼성종합건설 사장 및 관련자 16명이 구속되었으나, 입원급은 모두 과실치사 건에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고, 뇌물공여에 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 삼성종합건설은 2,550만원 과징금과 6개월 영업정지를 받고, 1996년 삼성물산에 합병되었다.
    • 기관사는 불가항력이었고, 사고 대응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 시설이 대형화 되고 복잡화 될수록, 법으로 규제되어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안전 절차에 관한 법은 ‘최소한’의 안전절차를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 열차 탈선 사고는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 사고이므로, 탈선을 했을 경우에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탈선이 우려되는 구간을 서행하는 경우도 있고, 관절대차의 사용이 효과를 본 일이 있다고 한다.
    • 노반 붕괴는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사전점검을 철저히 해야하며, 붕괴 우려를 발경하는 때는, 신속하게 운행중단 조치를 해야한다.
    • 또한 시민들도 시설 이용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러한 안전 조치들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당연하게 여기는 안전 문화 확립이 필요하다.
  • 이리역 폭발 사고 , 다이너마이트 대폭발로 1,402명 사상

    이리역 폭발 사고 , 다이너마이트 대폭발로 1,402명 사상

    1977. 11. 11. | 이리역(現익산역)

    사망 59명, 부상 1,343명,
    이재민 7,800여 명,
    가옥 6,800여 채 등
    재산피해 61억 원

    철도 공무원 뇌물 관행,
    화약 호송원 부주의

    이리역 사고, 이리역 폭발 사건

    이리역 폭발 사고 현장 구덩이가 크고 깊게 파인 리리역
    •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現한화)의 화물 열차가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폭발물 40톤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했다.
    • 하지만 당시 철도 공무원 사이에서는 ‘급행’이라는 명목으로 뇌물이 횡행했다.
    • 돈을 주지 않으면 열차를 제 시간에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 이에 따라 화약 호송원은 정차 시간동안 술을 마시고 무단으로 다이너마이트가 실린 화물차 안에 들어가서 촛불을 켜두고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어보니 불이 화약에 옮겨 붙고 있었다.
    • 당시 다이너마이트 상자, 뇌관상자 등 화약물 30톤이 실려 있었다. 
    • 깜짝 놀란 호송원은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소화기 같은 소화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 다른 직원들도 눈치를 챘지만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가 남아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 결국 열차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다이너마이트 등이 반응하여 대폭발을 일으켰다.
    • 이리역사를 중심으로 지름 30m, 깊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 기관차 본체는 폭심지로부터 700m 떨어진 민가까지 날아가버렸고 일부 파편은 직선거리가 7km나 되는 춘포면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 폭파 직후 기절했던 역무원이 정신을 차리고 들어 오려고 하는 다른 열차에 웃옷으로 신호를 보내 멈추었다.
    • 이리역에 정차 중이던 유조화차 기관사가 연락을 받고 뛰어 나와 인근 역으로 열차를 옮겼다.
    • 한국화약그룹 회장은 즉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전재산 90억 원을 모두 구호활동에 썼다.
    • 도주하던 호송원은 붙잡혀 ‘부작위에 의한 폭발물파열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만기출소 했다.
    • 진입하려던 열차를 멈춘 역무원은 후에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정부는 ‘새 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하여 이리시에 재정을 지원했다.
    • 수습과정에서 미담사례가 많았다. 자세한 것은 나무위키 참조.
    • 당시 국민가수이던 화춘화 공연 진행 도중 폭발이 일어났는데, 무명 MC가 화춘화를 구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MC가 이주일이다.
    • 폭발 후 이리역 주변에서 어린이들 사이에 ‘목걸이 줍기’가 유행했다.
    • ‘이리’라는 지명이 사라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 이리역이 사라지고, 익산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 안전 법규는 꼭 준수해야 한다. 법은 국회의원이 통과시키지만, 법 조문 1줄에 녹아 있는 것은 실무자들 고민의 결정체이다.
    • 재난을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미 발생했을 때는 자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응체제로 신속히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