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 폭발 사고 , 다이너마이트 대폭발로 1,402명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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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11. 11. | 이리역(現익산역)

사망 59명, 부상 1,343명,
이재민 7,800여 명,
가옥 6,800여 채 등
재산피해 61억 원

철도 공무원 뇌물 관행,
화약 호송원 부주의

이리역 사고, 이리역 폭발 사건

이리역 폭발 사고 현장 구덩이가 크고 깊게 파인 리리역
  •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現한화)의 화물 열차가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폭발물 40톤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했다.
  • 하지만 당시 철도 공무원 사이에서는 ‘급행’이라는 명목으로 뇌물이 횡행했다.
  • 돈을 주지 않으면 열차를 제 시간에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 이에 따라 화약 호송원은 정차 시간동안 술을 마시고 무단으로 다이너마이트가 실린 화물차 안에 들어가서 촛불을 켜두고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어보니 불이 화약에 옮겨 붙고 있었다.
  • 당시 다이너마이트 상자, 뇌관상자 등 화약물 30톤이 실려 있었다. 
  • 깜짝 놀란 호송원은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소화기 같은 소화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 다른 직원들도 눈치를 챘지만 일부는 도망가고 일부가 남아서 진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 결국 열차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다이너마이트 등이 반응하여 대폭발을 일으켰다.
  • 이리역사를 중심으로 지름 30m, 깊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 기관차 본체는 폭심지로부터 700m 떨어진 민가까지 날아가버렸고 일부 파편은 직선거리가 7km나 되는 춘포면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 폭파 직후 기절했던 역무원이 정신을 차리고 들어 오려고 하는 다른 열차에 웃옷으로 신호를 보내 멈추었다.
  • 이리역에 정차 중이던 유조화차 기관사가 연락을 받고 뛰어 나와 인근 역으로 열차를 옮겼다.
  • 한국화약그룹 회장은 즉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전재산 90억 원을 모두 구호활동에 썼다.
  • 도주하던 호송원은 붙잡혀 ‘부작위에 의한 폭발물파열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만기출소 했다.
  • 진입하려던 열차를 멈춘 역무원은 후에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정부는 ‘새 이리 건설 계획’을 발표하여 이리시에 재정을 지원했다.
  • 수습과정에서 미담사례가 많았다. 자세한 것은 나무위키 참조.
  • 당시 국민가수이던 화춘화 공연 진행 도중 폭발이 일어났는데, 무명 MC가 화춘화를 구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MC가 이주일이다.
  • 폭발 후 이리역 주변에서 어린이들 사이에 ‘목걸이 줍기’가 유행했다.
  • ‘이리’라는 지명이 사라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 이리역이 사라지고, 익산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 안전 법규는 꼭 준수해야 한다. 법은 국회의원이 통과시키지만, 법 조문 1줄에 녹아 있는 것은 실무자들 고민의 결정체이다.
  • 재난을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미 발생했을 때는 자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응체제로 신속히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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